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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1777호]-터키 참전용사 유가족들 50년 만의 해원(解寃)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07-07-04 10:18:45
  • 조회3928


오민경 님께서 unmck에 보내드리는 추천 주간조선뉴스입니다.

터키 참전용사 유가족들 50년 만의 해원(解寃)

“아버님이 한국전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전사한 것이 확실한데 수십 년이 지나도록 묘비 하나 없으니…. 너무 큰 슬픔 때문에 도저히 인사를 할 수 없습니다.”

오스만 카라테킨(53)씨는 곧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았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나눔문화’ 포럼실에서 열린 ‘터키 참전용사 유가족 환영의 밤’에서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사회자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칼은 희끗희끗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카라테킨씨는 결국 손수건으로 눈자위를 닦았다.

 
 
6ㆍ25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건만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들이 있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가해 숨진 참전용사의 유가족들이다. 터키는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1만5000명이라는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한 4대 참전국가다. 이들 중 800여명이 전사했고, 2200여명이 부상했고, 230여명이 전쟁포로가 되었다. 또 1000여명이 행방불명자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전후 고속성장의 달콤함에 취한 한국인들은 ‘혈맹’ 터키의 희생을 빨리 잊어버렸다.

한국·터키 친선협회와 나눔문화는 1년 전부터 ‘터키 참전용사 유가족 해원(解寃) 방문’(10월 20∼27일)을 추진, 7박8일 간의 일정으로 유가족 20명을 초청했다. 이번 방문은 ‘전쟁을 넘어 평화의 언덕으로’라는 주제하에, 민간단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유가족 초청 행사였다. 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은 이희수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는 “한반도 밖에서 한국인을 최고로 대접하는 민족은 터키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터키는 한국을 50년 간 짝사랑해왔다”며 “아무 연고 없는 나라의 전쟁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가장을 잃고 고통받으며 살아왔는데 우리는 그냥 방치해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남편 무덤에서 성묘 한 번 못해본 청상과부들이 이제 70세 노인이 되었고 이들은 가슴 속에 한(恨)을 갖고 있었다”며 “이들을 방치하고 통일로 가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초청의도를 설명했다.

무덤 앞에서 ‘코란’ 꺼내 읽기도,,

지난 10월 21일 부산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한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오후 2시 이들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이슬람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이어 각자 아버지ㆍ형ㆍ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앉았다. 어떤 이는 묘비를 확인한 후 눈물을 쏟았고, 어떤 이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묘비를 쓰다듬었다. 어떤 이는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향 터키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

스왓 보즈다으(53)씨는 “비록 50년이 지났지만 아버님을 만나서 무척 기쁘다”며 “영웅이 된 아버님이 자랑스럽고 한국을 위해 싸울 기회가 있다면 나도 오겠다”고 말했다.

형의 무덤 앞에 앉은 무암메르 보즈다으(76)씨는 조용히 ‘코란’을 꺼내 읽었다. 50년 전 8명의 다른 전우와 함께 전사했던 형에 대한 그리움에 그는 잠시 숙연해졌다. 보즈다으씨는 “당시 나도 한국전에 참가하려고 4진으로 선정되어 있었는데 형님이 전사하는 바람에 참가 못했다”며 “형님 무덤을 찾을 수 있도록 초청해준 분들과 형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주신 한국 국민 전체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를 6·25전쟁에서 잃은 세르달 바이람(26)씨는 이번 한국행을 모두 비디오에 담고 있었다. 그는 “한국과 터키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1, 2위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두 나라가 서로 세계평화를 지키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 며느리,손주들의 사진을 아버지 묘지에 올려놓은 메흐메트 세릭씨


 

출발 전 묘비를 확인한 5명 외에 나머지는 묘비를 찾는 데 꽤 고생을 해야했다. 당시 터키군 전사자의 이름을 미군이 기록, 한국 정부에 넘겨주는 과정에서 오기(誤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전사일자와 기록 등을 꼼꼼히 검토한 후 겨우 확인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가족 중 15명만 묘지를 찾았고 나머지는 결국 찾지 못했다. 아버지 묘지를 찾지 못한 줄피에 오즈겐(55ㆍ여)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개가한 후 양부에게 많은 구박을 받으며 ‘아버지’라는 이름을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그녀는 “50년 동안 기다렸던 방문이었는데 묘지를 찾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더 이상 전쟁이 없었으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위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다.


'전일정’ 터키 전역에 방송


현지에서 유가족들의 한국행을 추진했던 한·터 친선협회 터키지부장 김상진(46)씨는 “가부장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가장이 죽고 난 후 이들은 친척들에게 얹혀 살면서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받아왔다”며 “그 근본적인 동기 부여를 한국에서 했다면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기억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묘지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을 위해 이름이라도 적은 위령비를 마련해 이들의 가슴에 두 번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한에는 CNN 터키방송국 PD일행이 동행했는데, 전일정을 카메라에 담아 터키 전역에 방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행은 이튿날 후원사인 LG전자의 창원공장과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을 방문했다. 유가족들은 모두 “제2의 조국이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이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16세, 14세 때 아버지를 잃은 수나 세크반(70ㆍ여)ㆍ에롤 울룬루(68ㆍ남)씨 남매는 “아버지 없이 지내온 50년 세월이 너무 힘들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아버지의 피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버지가 계시는 한국이 ‘형제 나라’라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10월 24일에는 강원도 양구군으로 이동, 민통선 일대를 답사했다. 격전지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간 부모 형제 생각에 유가족들은 또 한 번 숙연해졌다. 이날 저녁 6시에 이뤄진 공식 환영행사에는 의미심장한 만남이 있었다. 당시 한국전에서 통역을 담당했던 백상기 주한 터키대사관 고문의 연대장이 바로 수나 세크반ㆍ에롤 울룬루씨 남매의 아버지였던 것. 이들은 백 고문으로부터 아버지의 전사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 수나 세크반(왼쪽),에롤 울룬루 남매(위)지난10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나눔문화'에서 열린 유가족 환영의 밤
 






일행은 주말 동안 남대문 시장 방문, 대한한방 해외의료봉사단의 침술치료, 용인민속촌 터키참전용사 기념비를 둘러본 후 10월 27일 아침 터키로 떠났다.
“이런 방문이 조금만이라도 빨리 이뤄졌다면 남편의 묘지를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미망인들이 올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터키·한국 양국 정부 차원에서 참전용사뿐 아니라 유가족에 대해서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번 행사가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추진되어 부모들의 피로 맺어진 인연이 후손들에게도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강석진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방문한 유가족들이 오랫동안 가졌던 원을 풀게 되고, 고맙게 생각한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터키와 한국 사이에 우호관계가 지속되고 두 나라 사이의 경제·문화 협력관계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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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호] 2003.11.06
박란희 주간조선 기자(rhpark@chosun.com)